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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남

1935년 일본 미에현(三重県)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요코하마에서 자라났다. 민족 차별에 반대하는 재일조선인 작가로서, 한일 위안부 생존자들을 취재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활동가로서 애써왔다. 또한 강제징용 피해자, 원폭 피해자 등 한일 양국 역사의 틈새에서 망각되곤 했던 존재들을 오랜 기간 다큐멘터리로 기록해 왔다.

1958년 발생한 이른바 ‘고마쓰가와(小松川)사건’은 그녀의 인생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범인으로 18세 소년 가네코 시즈오(金子鎮宇), 즉 재일조선인 2세 이진우가 특정되면서 일본 사회는 여러 층위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본 역사에서 부정되지만 그 틈새에 실존하는 재일조선인의 위치에 대해 질문하고, 그에 공감하는 사회운동 인사들이 구명운동에 나섰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박수남은 수감 중이던 이진우와 서신을 교환하며 그의 생각을 일본 사회에 알렸다. 사형이 집행된 1962년까지 오간 서신들은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 『이진우 전 서간집』(1979) 등 책으로 묶여 나왔고, 오시마 나기사는 이를 바탕으로 영화 <교사형(絞死刑)>(1968)을 연출하기도 했다.
피해자 유족 및 일본의 지식인들과 구명운동을 벌이던 중, 박수남은 조총련으로부터 ‘살인마는 재외공화국 공민이 아니’라며 사건에 관여하지 말라는 통고를 받는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며 구명활동을 이어간 탓에 조총련으로부터 ‘반국가인물’이라 낙인찍히며 배척당한다. 1964년 남한 유학을 타진하지만 당시 군사주의 정권이 요구한 충성 맹세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박수남은, 일본과 북한과 남한 어디에서도 ‘장소’를 허락받지 못한 채 자신처럼 국가 경계와 역사의 틈새로 내몰리고 은폐된 존재들을 취재하여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박수남이 망각으로부터 불러일으킨 존재들이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생존자, 학도병, 오키나와전투 생존자 등이었다. 이들과 대화하고, 공부하고, 이들의 운동에 연대하며 기록한 작업들이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6),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에서의 증언>(1991),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2012), <침묵>(2016)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다.
박수남의 기록을, 그리고 그의 인생을 채워나간 것은 식민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군사주의, 전쟁, 차별, 빈곤 등에 의해 여러 ‘장소’에서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험과 기억은 물론 존재마저 부정당하던 이들이다. 박수남은 민족, 젠더, 지역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영화와 더불어 이들과 함께 자리한다.

 
https://www.kmdb.or.kr/db/per/00184462

Filmography

2014부산평화영화제박수남감독 "꿈꾸는평화상" 수상

심사위원장 장율감독 맨트

박수남

1935년 3월 미에현(三重県)에서 태어나 요코하마에서 자랐다. 민족차별 철폐운동에 나서는 한편 재일조선인 2세 작가로서 집필활동을 해 왔다.

 

1958년〜

고마쓰가와 사건의 피고 소년 이진우와 주고받은 편지를 왕복서간으로 엮은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

<이진우 전 서간집> (1979년)으로 주목을 받았다.

자료:1994년8월 생활정보 기사 <재 조명해 본 교포사회의 비극 코마츠가와 (小松川)사건 >

 

1965년

히로시마를 방문해 피폭 동포들을 인터뷰하고 1973년에 증언집 <조선 히로시마 반(半)일본인: 나의 여행기>를 간행했다.

 

1982년

<또 하나의 히로시마: 조선인 한국인 피폭자들의 증언>을 출간한 후 1986년에 조선인 및 한국인 피폭자의 실태를 담은 기록영화 <또 하나의 히로시마: 아리랑의 노래>를 발표했다.

 

그 후 오키나와에 연행된 조선인 군속과 위안부를 주제로 찍은 영화 <아리랑의 노래: 오키나와에서의 증언>(1991년)을 제작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일본 전국에서 상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모임>을 설립, 일본정부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할머니들의 투쟁 지원에 나섰다.

 

1997년

오키나와 서쪽에 떨어져 있는 도카시키섬(渡嘉敷島)에 강제 연행된 배봉기 할머니를 비롯해 조선인 "위안부"와 "군속"들의 영혼을 추도하는 <아리랑 위령 모뉴먼트>를 건립.

 

2006년부터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교쿠사이(玉碎) 의 진실과 기억을 찾는 신작 원제 <누치가후 >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2012년 7월부터 도쿄 아프링크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2013년 10월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특별초대작품으로 상영되었다.

2014년

한국 부산평화영화제 대상<꿈꾸는 평화상>수상.

2016년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침묵>  상영

World Premiere

2016년9월  

DMZ국제다큐영화제<특별상/용감한 기러기상/>수상 

2016년 12월

제19회 KBS해외 동포상 수상(문화 예술 분야)

‘KBS 해외동포상’ 박수남 영화감독 등 5명 선정 뉴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94870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94600

교구사이(옥쇄) 그 진실

2014 / Japanese / korean / Color / 138 min

2012년7월28일 일본토쿄 UPLINK극장에서 개봉

2013년10월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2013 특별초대작품

2013년9월 아이치 국제 여성영화제 초청작품

2014 부산평화영화제 대상 

 

■촬영오오쯔 코시로 /테루야 신지■편집우에시마 히로유키/오마타 타카유키■음향하라 마사미■코디네이터 야수이요시오■Voicing카토 이사무■조감독 박마의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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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일어선 

할머니들의 30여 년의 기록 

재일교포 2세 박수남 감독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영화는 2014년 속리산에 사는 이옥선 할머니와 감독이 반갑게 재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1989년 오키나와의 배봉기 할머니를 기록한 영상이 나온다. 그리고 1994년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투쟁한 15인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활동이 이어진다. 그 중 장구를 치며 앞장섰던 이옥선 할머니가 특별하게 포착된다. (출처 :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램노트)
<침묵> 글:문정현   (다큐멘터리 감독) / 2016.05.17

●2018/3/18 "위안부 문제 지겹다는 사람들에게..."80대 재일교포 감독의 호소 출처: 중앙일보

 2016년9월  DMZ국제 다큐 영화제 동영상

 <특별상/용감한 기러기상/>수상 

http://dmzdocs.com/archives/program/the-silence

다큐멘터리 117분/ HD/ COLOR/ 대한민국,일본제작/2017일본개봉

제작사:아리랑의노래 제작위원회

감독/박수남

출연/이옥선 , 배봉기 

예고편:  https://youtu.be/X3qQdaQEeMk

2020 제22회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19 Resistance Film Festival, Korea, Best Director Award

2016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16 제8회 DMZ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특별상/용감한 기러기상 수상 

2016 제21회 SHINTOKU 공상의 숲 전영제

2016 제9회 서울노인영화제

2017 제91회 키네마 순보 베스트10 <문화영화부문>제6위

2018/8/16,18 한국영상자로원 영화 ‘침묵, 일어서는 위안부’ 상영과 GV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

Nuchigafu—Life Is a Treasure, “Gyokusai” Stories in the Battle of Okin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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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미군이 게라마제도에 상륙하기 시작했을 때 섬에서는 교쿠사이(玉碎옥쇄)라 불리는 극한의 비극이 벌여졌다. "미군이 상륙하는 그 때엔 “교쿠사이” 밖에 없다". 천황의 군대는 적군에 투항하면 안 되었고 떳떳이 교쿠사이 하는 것 즉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하여 주민들에게도 죽음을 강요했다.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형이 동생을 그렇게 오키나와 사람들은 서로를 죽였다. 한편 오키나와에 수만여 명의 조선 청년들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그 생지옥에서 살아남아 고향인 한국 경상북도로 돌아온 징용자들 6명은 반세기 만에 오키나와를 찾아가 전쟁 당시 갇혀 지내던 참호와 미군 진지를 육탄 공격한 현장을 찾아낸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처음으로 일본군에게 처형당하여 비명횡사한 동포들의 존재가 밝혀진다. 당시 일본 군인은 오키나와 본섬에서 벌어진 격전에서 조선인 징용자들이 폭탄을 짊어지고 미군 탱크에 돌격하라고 강요당했음을 증언한다. 또 오키나와 주민들의 증언은 위안소에 끌려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위안부 소녀들의 비참함도 부각시킨다.

증언자의 대부분은 90세 전후이다. 20여년을 걸쳐 기록해온 오키나와, 조선의 “교쿠사이(玉碎/옥쇄)” 생존자의 증언은  오키나와 전투의 본질을 밝히고 그 책임을 추구한다.

다큐멘터리  138분/ SD/COLOR/ 일본

제작사:아리랑의노래 제작위원회

감독/박수남

촬영: 오츠 코시로, Teruya Shinji(테루야 신지)

편집: Ueshima Hiroyuki(우에시마 히로유키) Omata Takayuki

음악: Hara Masami(하라 마사미),사운드(음향): Okui Yoshiya(오쿠이 요시아) 조감독: 박마의

2013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특별초대

2014 한국 부산평화영화제 대상<꿈꾸는 평화상>수상

아리랑의 노래 -오키나와에서의 증언

Song of Arirang—Voices from Okin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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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오키나와 전투에는 수만 명의 조선인 청년들이 "군속"으로 동원되었고 천 명이 넘는 소녀들이 "위안소"로 끌려갔다. 살아서 돌아온 징용자들을 찾으려 한국 경상북도로. 오키나와와 한국에서 모은 증언을 통해 조선인 학살과 위안소에 갇힌 소녀들의 실태가 밝혀진다. 도카시키섬에 있던 위안소로 연행된 배봉기 할머니는 이 작품이 완성된 해에 돌아가셨다. 기록 증언은 반세기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위안부"들이 천황의 군대가 만든 성노예임을 보여준다. 

1991/다큐멘터리/100min/COLOR/16mm/일본  

제작사:아리랑의노래 제작위원회

감독/박수남

촬영: 오츠 코시로

음악: Hara Masami(하라 마사미)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

Another Hiroshima--Song of Ar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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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재일동포 2세 여성감독 박수남은 1965년 일본 식민지배로 인해 피폭한 조선인 피폭자 실태조사를 위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했다. "원폭에 38선은 없다"며 히로시마 구석지에 있는 원폭 피해자 밀집 지역, 이른바 원폭 슬럼에서 생활하면서 남북의 피폭 동포들의 증언 운동을 전개했다. 강제연행과 피폭. 전후보상에서 빠진 그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 만든  이 작품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 일본"을 내세운 반핵운동에 큰 충격을 주었다. 87년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서 상영되어 "일본 식민지배로 인해 피폭당한 조선인 피폭자들에게 일본정부는 국가보상을 하라"는 결의가 채택될 정도로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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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네 도시노부(大嶺俊順, 영화 감독)
이 영화는 1986년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박수남의 라이프 워크가 응축된 강렬한 문제작이다.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기록된 그 증언의 하나하나가 나태한 일본인의 가슴을 찌른다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 2016년 제7회 부산평화영화제 특별상영/2016.05.29

1986년/ 58분/16mm/COLOR/일본  

제작: 아리랑의 노래 제작위원회,이해선

2016년 한국어자막 

촬영:Hoshino Kinichi(호시노 킨이치로우)

편집:Tomizuka Ryoichi  (토미즈카 료우이치),

음악: Hara Masami(하라 마사미)

ぬちがふう
アリラン
ヒロシマ
ぬちがふぅ2

<교쿠사이(玉碎) 그 진실-오키나와가 부르는 아리랑> 2014

2014년 한국에서 상영하기 위해 새로운 증언을 추가 편집한 <교쿠사이(玉碎) 그 진실-오키나와가 부르는 아리랑> 2014년판을 완성했다.

다음 세대에 이어줄 귀중한 기록      

●세토우치 자쿠초 (瀬戸内寂聴, 작가)

 

박수남 감독의 기록영화 <쿄쿠사이>를 보고 너무나 감동받았다. 그 감동은 상쾌하다든가 아름답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라 뜨거운 눈물과 깊은 한스러움을 수반한 것이었다. 

수남 씨와 나는 50년의 우정을 이어온 친구인데 만난 적은 몇 번 안 된다. 일본에서 나고자란 수남 씨는 그 출생의 운명 때문에 수도 없는 고난의 삶을 살아 왔다. 그가 훌륭한 점은 아무리 힘겨운 상황이라도 인간적 존엄을 잃지 않고 세상과 자신의 입장을 바라보고 차별을 미워하고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바라면서 홀로 싸워온 그 모습에 있다. 거센 바람에도 박수남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수남이가 70대가 되면서 전력투구한 영화다. 

나는 보면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고 몸이 떨렸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치켜들기도 했다. 이 영화는 태평양전쟁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과 미국의 사투 속에 숨겨진 일본군이 강요한 섬 주민들의 집단자결 실태와 조선에서 연행 혹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 군속들, 위안소로 끌려간 소녀들의 "교쿠사이"라는 비참한 학살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키나와에서 징병된 초등학생, 중학생이 철혈근황대(鉄血勤皇隊)라는 이름 아래 폭탄을 안고 미군 탱크에 육탄 공격을 강요당하는 등 오키나와 주민들과 조선인 군속들이 일본군의 방패로 이용됐다는 차별적 실태가 밝혀지는 것을 보고 나서도 일본인들은 고개를 들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 

박수남의 끈질긴 증언자 찾기는 70명에 이르렀다. 그 촬영 테이프는 120시간이나 되었다. 수남 앞에 앉으면 그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솔직한 표정으로 떠올리고 싶지도 않는 쓰라린 경험을 줄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 표정이 밝아지고 부드러워지는 모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의도적으로 검은 색으로 덧칠해 지워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취재는 잊혀져 가는 민중의 진정한 목소리를 다음 세대에 이어줄 귀중한 기록이 되었다. 

오키나와가 왜 지금도 불행한지 그 뿌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박수남의 굴하지 않는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수남 씨 고마워요. 또 만납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일본 뜨거운 반응

●세키다 히로오(関田 寛雄, 아오야마 학원대학 명예교수, 일본 기독교단 목사)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일본 전쟁책임에 대해 어떤 글도 표현하지 못한 전쟁의 죄악과 잔인한 현실을 그려낸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미래를 고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제언입니다.

이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박수남 씨는 묵묵히 꾸준히 실증적으로 귀중한 증언을 하나씩 모았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잃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인류사적 유산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한 작품입니다.

 

●야마시로 히로지(山城博治, 오키나와 평화 센터 사무국장)

우리는 오키나와 전투에 강제로 연행된 조선 사람들의 엄청난 비극과 고난을 제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에서부터 끌려갔을 때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식으로 낯선 땅에서 가축 부리듯 혹사당하다가 죽었는지, 조선인들의 한을 다시금 느꼈다. 이 비극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의 과정에서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평화교육은 받아왔지만 조선인 위안부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습니다. 이렇게 혹독한 취급을 당했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고등학생, 여성, 오키나와)

 

일본에선 위안부든 일본이 중국에서 저지른 짓이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그런 증거는 없다고 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입니다. 해결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50대, 여성, 도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죄에 대해서, 그리고 책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든 작품입니다.(70대, 여성, 도쿄)

 

저는 재일조선인 3세지만 조선에서 끌려와 이름도 언어도 인간적 존엄도 빼앗기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니 정말 창피합니다. 오키나와 전투와 교쿠사이에 대해서도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진신을 어둠 속에 묻으려는 권력자들! 역사를 바로잡고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실감했습니다.(50대, 여성, 도쿄)

 

20여 년이나 걸쳐 인터뷰한 기록은 귀중한 역사 자료이며 더 많은 곳에서 상영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집단 자결도 위안부도 강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일반 사람들이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후의 교육을 시민들이 되찾아야 합니다. (60대, 여성)

 

훌륭한 영화고 감동받았습니다. 박 감독님께 다시금 감사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70명이나 되는 증언은 감독님의 열정과 노력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 (강제 연행된) 군속들의 증언은 충격이었습니다. 누가 교쿠사이 명령을 내렸는지가 2012년에 와서야 밝혀졌다는 사실은 일본의 정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을 추진하려는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현 상황을 결코 쉽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이라고 거리낌 없이 공론되는 상황은 아주 위험합니다. 오늘 상영회는 타이밍이 아주 좋은 기획이었습니다. (70대, 남성, 후쿠이 현)

 

●후지모토 야스나리(藤本泰成, 포럼 평화 인권 환경 사무국장)

조선에서 연행된 위안부가 부르는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 노래를 포화 속을 살아남은 오키나와 할머니가 지금 부른다. 그 노래는 마음 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생명"의 소리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살아서 돌아온 조선인 군속과 오키나와 주민이 서로 손을 잡는 모습에 약자를, 그리고 더 약한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전쟁의 본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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